2024년 HBO Max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더 펭귄(The Penguin)’은 DC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범죄 도시 고담에서 악당 ‘펭귄’이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크 히어로나 빌런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기존 범죄 드라마와는 다른 결을 보이며, 다양한 화제성 포인트로 많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과연 범죄를 미화하고 있는가, 혹은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가, 아니면 단지 강렬한 캐릭터성에 기대는가에 대한 논의는 콘텐츠의 방향성과 시청자 반응을 가늠하는 핵심 질문이 됩니다.
범죄미화? ‘악당’ 중심의 서사에 대한 논란
드라마 ‘더 펭귄’은 배트맨 시리즈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던 ‘오스왈드 코블팟’, 일명 ‘펭귄’의 개인사와 범죄 조직 내 입지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러한 빌런 중심 서사는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악당의 인간화’ 트렌드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설정이 자칫하면 범죄 그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 속 펭귄은 조직폭력, 살인, 협박 등의 범죄 행위를 거침없이 저지르면서도, 동시에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배경을 드러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학대, 가난, 무시, 상처를 안고 성장한 인물이며,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자기 방식의 생존’을 택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일부 시청자에게는 범죄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장치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범죄를 정당화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가 자극적인 폭력 장면과 조직 내 정치적 암투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면서도,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을 ‘매력적인 안티히어로’로 그리는 방식은 도덕성과 오락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유발합니다.
구조비판? 고담이라는 디스토피아의 현실 반영
한편, ‘더 펭귄’의 진짜 의도는 단순히 캐릭터의 영웅화를 넘어, 고담이라는 도시 자체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범죄가 왜 반복되고, 왜 시스템이 실패하는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펭귄이라는 캐릭터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개인의 도덕성보다는 사회 전체의 붕괴와 부패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고담시는 부패한 경찰, 매수된 정치인, 무능한 행정 시스템, 계급 간 불균형, 극단적인 빈부격차 등이 얽혀있는 완전한 아노미 사회입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 곧 범죄가 되는 구조는, 단지 드라마적 설정이 아닌 현실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메타포로 기능합니다.
펭귄이 범죄 조직에서 권력을 얻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은, 실상 그 누구도 시스템에 기대지 못하는 고담이라는 도시의 생존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더 펭귄’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사회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새로운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한 범죄 미화가 아니라, 범죄를 낳는 토양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던지는 셈입니다.
캐릭터성? ‘펭귄’이라는 서사의 무게중심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흡입력은 단연 ‘오스왈드 코블팟’ 캐릭터 자체의 설득력에 있습니다. 배우 콜린 파렐이 연기한 펭귄은 기존의 단순한 악역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밀한 감정선과 입체적 사고를 가진 인물로 재해석됩니다. 그는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 전략적이고 야망 있는 인물이며, 동시에 외부 환경에 끊임없이 상처받는 감정적 약자이기도 합니다.
‘더 펭귄’은 기존의 히어로나 빌런 구도를 뒤집는 모럴 그레이(Moral Gray)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로 인해 시청자들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펭귄이라는 인물에게 몰입하거나 감정이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드라마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캐릭터가 모든 해석의 중심이 되는 구조를 강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렬한 캐릭터 중심 구도는 종종 드라마 전체 메시지를 흐릴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합니다. 범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더라도,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 시청자 스스로가 비판적 시선을 놓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펭귄’의 성공에는 캐릭터의 힘이 결정적이지만, 동시에 그 캐릭터에 대한 해석 역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요소로 남습니다.
드라마 ‘더 펭귄’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도덕성과 사회성, 오락성과 비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범죄를 미화한다는 우려와는 별개로, 이 작품은 오히려 범죄가 탄생하는 시스템과 인간의 취약성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화제성과 논쟁을 동시에 품은 ‘더 펭귄’은 오늘날 범죄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청자는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이야기의 맥락을 읽고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